가끔, 마포겐바도 갑니다 (韓国ライブアイドル)

#2 - NEKIRU의 첫 일본 원정을 맞이하여 (부제: 나만의 시간열로 보는 ねえ、聴いてる?)

진타(ZiNTA) 2024. 10. 9. 22:41

이번 연휴때 여름부터 쌓아놓은 체키를 정리하다가 과거에 찍어놓은 체키들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나서 적어봤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과 시선에 맞춰서 적어놓은터라 써놓고 보니 큰 의미없는 오타쿠 일기 같은 내용이 되었습니다만 뭐 이렇게 보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느낌으로 넘어가 주시기를...


'19년 4월 27일

이타페스는 이미 5회차를 맞이하고 있었고 당시 BiSH의 투어(혹은 WACK그룹)에 미쳐있던 나는 그제서야 이타페스를 처음 가봤다. 네키루의 셋리에 「BiSH-星が瞬く夜に」가 있었고 BiSH의 곡들을 한국에서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 들었던 소감은 「기쁨/신선함반 + 당황스러움반」 정도의 기분이었던 것 같음(ㅋㅋ)

첫 체키? 그 시절 체키포즈들은 죄다 청소원풍(!)이었다 (눕거나 혹은 밟히거나...)

 

당황스러움반의 이유는 BiSH로 대표되는 WACK 그룹은 타이반이 아예 없다시피하고 주로 본인들의 투어 위주로 활동하기 때문에 현장을 다니는 WACK 오타쿠가 아닌 이상은 플로어에서 콜/믹스가 제대로 나올리 없기 때문이었다. 다른 곡이 나왔을때보다 다소 얼어 붙는 플로어를 보면서 「왜 굳이 이 곡을 골랐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다음에는 WACK은 안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소하의 데코체키가 안팔려서 물판이 끝날때쯤에 소하로부터 한 장을 선물로 받았다ㅋㅋㅋ 지금이야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시작은 그랬음ㅋㅋ

 

 

'19년 6월 30일

이번에는 プロミスザスター(BiSH)를 들고왔다. (당시는 나류/유메 2인체제)  「와... 이걸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미스더스타도 플로어의 분위기는 비슷했다.(ㅋㅋㅋ) 그때까지도 개인적으로는 그 시절 마포겐바의 분위기가 그러했 듯 플로어의 분위기에 맞춰서 믹스 위주의 곡들로 꾸리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판때는 당시 체키스탭을 직접 꾸리던 수PD를 불러서 같이 놀면서 찍기도 했던 시절

 

 

'19년 8월 18일

소하가 オーケストラ(BiSH)를 부르다가 감정이 터졌는지 대성통곡했다. 무대의 완성도를 떠나서 감정의 전달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확실한 한방이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IDOL 티셔츠(BiSH를 상징하는 공식 굿즈)를 건넸다. WACK 오타쿠 보다는 눈치 안보고 본인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에 대한 마음 속 작은 리스펙이었다.

레슨(연습)할때나 입어주세요... 하고 건넸었다...
나중에 별 생각없이 트윗을 보다가 레코딩할때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조금 뿌듯하긴 했었음ㅋ (출처 : SOHA 공계)

 

이 시점부터 내 머릿속에 조금씩 각인된 네키루의 이미지는 「뚝심」

눈치 안보고 본인들의 무대를 만들고 싶어하는 뚝심, 몇 번의 반복이 계속되도 계속 도전하는 뚝심, 최근에 본인들은 이걸 조금 더 이쁜 이름으로 「낭만」으로 치환하여 부르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 그 근본은 뚝심이라고...

 

 

'20년 2월, 코로나 암흑기의 시작

이후 '20년이 들어서 코로나 직격탄으로 내 BiSH 투어 티켓들이 휴지조각이 되는 것을 시작으로 내 모든 원정일정이 무너졌다. 처음에는 1-2달이면 지나가려나 싶었는데 출국할 수 없는 날이 몇 달씩 지속되면서 뭘 해야할지 모르는 날들이 이어졌다. '18년, '19년 모두 투어일정에 맞춰서 3주에 한 번 꼴로 원정길에 올랐기 떄문에  '20년초에 시작 된 코로나는 「당황-무력감-좌절」의 3가지 패턴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그나마 일본보다는 규제가 덜했던 마포는 4월쯤에서야 겐바가 부활했다. 

 

나갈 수 없는 상황의 대체격으로 마포겐바에 가봤지만 이상하게도 무언가 말 할 수 없는 현타가 느껴졌다. (WACK 관련 무대를 보면 더 그랬던 듯) 원정은 둘째치고 주말마다 다가오는 당장의 무력감이 너무 싫어서 주말마다 나가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휴가때마다 종주 몇 번 갔다오면 다 풀려있겠지? 하던 생각으로 종주길에 오르던 게 매년 이어져 '23년 다시 원정길에 오를때쯤에는 오산자전거 길을 제외한 모든 길을 완주하면서 그랜드슬램 직전까지 인증을 쌓아놨다...(...)

 

정서적으로 소속감을 완전히 잃은 나는 그후 마포겐바는 1년에 한 두번 갈까말까한 수준으로 재택생활을 했고 그게 '23년 상반기까지 이어졌다. WACK 관련 영상을 보면 현타를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 정작 매번 나오던 Blu-ray까지 사놓고도 포장도 뜯지 않은채 넘기는 일이 많았고 대신 그전에는 좀처럼 보지 않았던 AQBI 영상들을 찾아보는 재택이 되어갔다. (AQBI는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시대 퀄리티 높은 온라인 영상을 가장 많이 뿌리던 사무소 중의 하나였다)

 

'21년 4월, 근 1년만에 다시 마포겐바에 놀러갔을때 / '22년 4월 그 당시의 관심사(MIGMA SHELTER, 69)를 반영한 코멘트 (지난날의 체키는 정말 역사가 되는 듯...)

 

그나마 '21년 ~ '22년 몇 번 마포겐바에 놀러갈 수 있었던 것은 지금에서야 뒤돌아보니 김소하 선생님께서 겐바에 오든 말든 혹은 네키루를 언급하든 안하든 본인의 계정에서 계속 화보를 찍어주고 계셨기 때문이었던 듯. 정말 1년만에 갔는데도 시시콜콜한 걸 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23년 10월 9일

그후 '23년 Finger Runs를 계기로 5월부터 다시 원정길에 오르면서  AQBI로 주겐바가 완전히 옮겨졌는데 엉뚱한 곳에서 네키루의 소식을 듣게 된다. 시부야, 요코하마의 라이브 하우스를 전전하던 와중에 아쿠비 오타쿠들로부터 (그것도 북미 오타쿠가...) 「한국에서 AQBI를 커버하는 그룹이 있는데 아느냐?」로 시작한 대화의 화제는 한국에도 겐바가 있느냐로 이어졌고 (적어도 AQBI 오타들에게는) 네키루가 한국 겐바의 상징이 되가는 느낌이었다. 이날은 신생 베루하 멤버들과 네키루의 asthma를 같이 봤다.

네키루의 asthma가 결국에는 커버임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 된 이유는 코로나 이후 정작 베루하의 계보를 잇는 AQBI의 그룹들(TTTs '19년 2월 해산 - NILKLY '22년 7월 해산)에서 끊어진 asthma 퍼포머의 명맥이 엉뚱하게 해외(한국)에서 네키루를 통해 계속 이어지면서 일본을 비롯한 해외 오타쿠들에게 어필 된 부분이 크다. 겐바에서는 지역을 막론하고 AQBI 계외는 해외 오타쿠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커버라도 그간 누적되어 쌓아 올린 것이 생각보다 큰 홍보 효과를 누린다는 생각을 했음.

 

 

'23년 10월 21일

근 1년반?만에 마포겐바에 가서 네키루의 제로/나노를 처음 봤다. 동시에 3인의 오리곡(Take My Way)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악곡과 퍼포먼스면에서 내가 다니고 있는 주 겐바(에쿠스토로메 출연팀들)와 별차이가 없거나 혹은 그 이상으로 느껴졌고 이 정도면 해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커버가 필요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커버 왜 함? 진짜...) 이 시점부터 마포겐바 출입빈도가 늘어났다. (기존 1년에 2-3번에서 2-3달에 한 번은 가게 되었다)

 

 

'24년 2월 17일

오가사와라유이(하고만 찍는) 전용 체키 포즈(포즈명: JAPANESE STYLE, 유이作)가 계정에 몇 번 올라갔다가 경고누적으로 철퇴를 맞고...(-,.-)

 

 

'24년 3월 3일

AQBI의 대만원정 마지막날 저녁 오프회때 다나카상과의 짧은 면담에서 놀라웠던 것 중 하나는 내가 한국 원정 얘기를 했을때 내가 아닌 다른 일본의 오타쿠들이 직접 네키루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같이 거들었다는 점이었다. AQBI가 한국에 오든 안오든간에 네키루의 인지도 상승만큼은 직간접적으로 크게 느낄 수 있는 날이었다. 더불어 일본 진출도 시간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세는 후기 참조)

 

240301-03 대만 아이돌 겐바 원정기 - #5 두 번째 타이반 & 두 번째 오프회 (+복귀날)

피곤이 좀 쌓였지만 마지막날이니 어기적어기적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전날처럼 또 편의점에서 오니기리로 때우기는 싫었기 때문에 주변에 찾아본게 결국 모스버거에서 하루를 시작했음.

zinta.kr

 

 

'24년 4월 6일

처음으로 지인 2인을 네키루 겐바에 초대했다. 둘 다 10년이상 일본전역을 떠돌면서 도루오타판에 있는 분이라 워낙 눈이 높아진 오타쿠들인지라 반응이 궁금하기도 했고 뭐 네키루 무대도 요즘 퀄리티면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보라는 퍼포먼스는 안보고...ㅉㅉ

 

'24년 7월 12일

RAY의 한국 원정이 있었고 평소 마포겐바 출입은 없고 같이 바다건너 원정길을 오르고 있는 (지난 4월과는 다른)트친들의 평이(커버였음에도) 일부 곡은 네키루가 퍼포먼스가 더 낫다는 평을 했다.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기에 간만에 나름의 리스펙을 표현하고자 Finger Runs 티셔츠를 주문했다...(ㅋㅋ)

 

 

'24년 7월 27일

도쿄 모처 숙소에 누워있다가 공계에 올라온 타이페이 영상을 봤다. 오후에 아사쿠라 미즈호 특전회에서 네키루의 대만행 이야기를 하고 왔던터라 궁금하긴 했는데 막상 올라온 영상을 보니 무대 매너나 완성도가 (마포겐바에는 없는 이벤트지만)나름의 메이져 레이블 데뷔 선언 같은 느낌이었다. 

내 기준으로는 생각보다 큰 무대를 잘 쓴다는게 인상 깊었다... (쇼케이스 보는 기분이야) (영상 : 네키루 공계)

 

'24년 8월 2일 - 4일

TIF 첫날부터 네키루의 티셔츠를 오다이바에서 봤다. 보통은 출연자들 티셔츠 입고 가는게 기본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큰 효과가 있었다. 이들 중 몇몇이 실제 베루하 물판줄에 오면서 평소 한국에 대한 어필도 별로 없던 베루하 멤버들이 갑자기 한국어를 물어보는 등 내 개인적인 체감도 컸다.

 

티후 마지막날 타이틀미정 특전회에서 토가시가 뜬금없이 소하를 물어보았다. 「뭐지? 한국 오타쿠라면 다 알거라 생각하는건가...?」 일개 오타쿠로 보고 있다면 전혀 언급조차 없을텐데 예전과는 달라진 김소하 선생님의 위치를 다시 느꼈다.

 

 

'24년 8월 17일

네키루의 기념비적인 원맨이 있었고... 지난 4월까지는 무언가 마성(!)의 기운이 느껴져서 만나길 피하고 있던 나노였으나 이날 찍은 것을 정리하다보니 첫 체키 뒤로 거의 매달 1장씩은 찍고 있었음에... 놀라게 되었다.

 

 

'24년 8월 18일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인 TIF ASIA TOUR 2024 EXTRA의 발표(타이반 상대는 ベルハー/RAY). 동시에 후쿠이신리상(福井シンリ)의 작/편곡의 신곡 The Naked의 발표. (무대 첫 공개는 전날 8/17 이뤄졌음) 분명한 한걸음 더 전진이었다. 염원의 타이반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51:49 정도로 후쿠이상의 곡을 쓴다는 것이 더 컸던 것 같다. 타이반은 언젠가 된다는 느낌이었지만 이건 생각도 못했던 부분이라 너무 얼척 없었기 때문임.

후쿠이신리(福井シンリ) - Finger Runs의 「Agitator」, 「√G」, 「Red Sprite」, 베루하의 「2SoundDown」, 「c.a.n.d.y」, 「タナトスとマスカレード」 등등을 작/편곡하신 선생님. 타니야마히로아키상(タニヤマヒロアキ)과 더불어 AQBI 음악의 쌍두마차이자 근본 같은 선생님.

글쓰는 시점('24년 10월)에 베루하/레이의 합동 투어 일정이 발표되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한국 일정도 추가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24년 8월 24일

원래 원맨때 완성하려 했으나 제로줄에서 짤려서(-,.-) 그 다음주에 일러스타 페스에 가서야 완성시켰다. 나노 물판들어가서 급한 마음에 제대로 설명도 안하고 손에 쥐어주고 포즈 잡고 찍는 바람에 나노가 '이게 뭐지?' 하다가 끝나면서 선물이라는 설명에 급방긋 하던게 기억남ㅋㅋ

베루하/RAY 다음에는 핑거런즈 하고도 타이반 합시다...

 

 

'24년 8월 31일

규농에서 코즈에(베루하)와 얘기하다가 코즈에가 네키루의 활동과정(본인의 그룹을 만들어서 활동을 시작했던)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이것도 좀 뜬금없던 네타였던지라 진짜 타이반을 하긴...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츠바메도 10월 19이 타이반의 라이브 하우스까지 기억하고 있어서 좀 의외였다. (난 츠바메한테 DIVE라고 했는데 츠바메는 CYCLONE이라고 했고 찾아보니 CYCLONE이었음)

코즈에는 아마 이것을 읽은 것인 듯

 

네키루의 첫 일본진출은 그냥 단순히 한국의 그룹이 활동 반경을 넓힌다는 것을 넘어서 김소하 선생님의 지난 오타쿠 이력 때문에 꿈 (혹은 염원을 이룬다)는 나름의 보기 드문 스토리가 있어서 일본의 오타쿠들에게도 강하게 어필되는 부분이 있다. 그냥 대충 읽어도 최소 다큐멘터리잖아. (아이돌판 인간극장임)

 

 

'24년 9월 23일

1. AQBI 오키나와 원정 마지막 특전회에서 미즈호가 말하길, 「나도 네키루 라이브 보러 갈 거야!」 라고 했으나 돌아와서 확인해보니 미즈호 선생님 그날은 낮부터 핑거런즈의 센다이 라이브가 예정되어 있읍니다...(...) 라이브 중에서는 아사쿠라 미즈호가 오키나와에 왔기 때문에 졸업하고 나서도 다시 무대에 올라온 마이츄(류큐아이돌의 전 멤버이자 현 프로듀서)가 있었기 때문에 「한쿡에도 너 같은 친구가 있어...」 라는 생각을 했다.

 

2. 오키나와 라이브때 이틀 연속 마이크 트러블로 (오타쿠는 대부분 눈치채지 못했으나) 무언가 최선의 라이브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실망감에 급기야 라이브 중 눈물을 보인 코즈에를 보면서(덕분에 체키를 찍을때도 눈이 부어있었다) 이 친구는 진짜 뭐든 진심으로 부딪히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베루하의 기세는 연중 최고인 것 같은 느낌이고 그래서 곧 있을 타이반이 더욱 기대 되었음.

 

 

그리고 '24년 10월 19일...

얼마 남지 않은 올해 가장 기대되는 타이반이 시작된다...

누군가는 끝나고 앰뷸런스에 실려갈 기세로 라이브 부탁합니다.

시부야 싸이클론에서 봅시다, 이만.